대놓고 '황제 복무' 였지만 논란 1도 없었던 인물 이창호

2022. 12. 17. 12:47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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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황제 복무' 였지만 논란 1도 없었던 인물 이창호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특혜를 받는 것을 지칭하는 대한민국 국군의 속어. 주로 규정에 없거나 어긋나는 특혜를 받으면서 복무하는 것을 말한다.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아니라 의무경찰 관련 특혜 의혹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우병우의 아들이 의무경찰 복무를 하면서 생긴 운전보직 전출과 관련된 논란과 관련된 기사 중 매일경제에서 나온 기사 제목에 황제복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황제복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공군 병사 황제 복무 논란이 알려진 이후이다

 

장교와 부사관도 황제복무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일반 장교와 일반 부사관의 경우에는 애초에 모병제이고 엄연히 직업이기 때문에 황제복무의 사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장교인 군법무관과 의사 자격이 있는 장교인 군의관 등이 군 복무를 하면서 규정에 어긋나는 복무를 한 것이 적발된 사례가 있다. 이에 대해서 홍영표 의원은 변호사 면허증과 의사 자격증은 "황제복무 면허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본인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대학교를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학교 시절 때 미리 5급 공무원 시험에 최종합격을 하고 군대를 장교로 복무를 하기 위해 기본병과장교로 군 복무를 하는 것은 황제복무가 아니다. 특혜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정당하게 군 복무를 하는 것이니 이들을 비난하면 안 된다. 군 복무 도중에도 허구한 날 공공기관 및 공기업 등에 가서 선배 공무원들에게 미리 공무원 업무에 대해 교육을 받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엄청나게 바쁘다.

 

의무복무에 의해 입대한 현역병이 규정에 없는 특혜를 받으면서 군복무를 하는 것으로 이 특혜를 받으면서 복무하는 병사는 황제병사로 부른다.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아니라 의무경찰 관련 특혜의혹에서 처음 사용됐는데, 우병우의 아들이 의무경찰 복무를 하면서 운전보직 전출과 관련된 논란과 관련된 기사 중 매일경제에서 나온 기사 제목에 황제목무라는 단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아래의 예시는 실제 정제계의 높으신 분들(모 대기업 부사장 아들이 군복무를 하면서 생긴 일로 논란, 장관 아들이 군복무를 하면서 생긴 논란 등)의 사례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예를 종합한 황제 복무의 예시이다. 영내생활이 강제되는 경우 규정에 없는 형태로 생활관에서 생활하기. 2인이 넘는 형태의 1실 생활관에서 1명이 독차지하는 형태의 생활로 공군 병사 황제 복무 논란에 나와있는 형태의 생활이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사역시키기 자대배치와 관련된 청탁 외출, 외박, 휴가, 복무형태와 관련된 황제복무규정에 없는 외출하기, 외박가기, 휴가가기 영내생활이 규정된 병사 중 자대와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병사가 규정에 없는 출퇴근 형태로 복무하기: 대한민국 국군 기준으로 자대와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현역병을 상근예비역이 아닌데도 상근예비역과 동일하게 출퇴근 형태로 복무시키는 것으로, 이런 형태의 군복무도 황제복무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기사이다. 프로 九단이며, 세계 바둑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둑인 중 한명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의 모티브였으며 응답하라 1988에서도 언급되었고 아직까지도 전설로 꼽히는 상하이 대첩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바둑인들 사이에서 붙여진 별명은 석불石佛, 말 그대로 돌부처이다.

 

그의 사려깊고 우직한 바둑의 기풍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붙은 별명이 아닐 수 없다.

 

바둑의 신세계대회 우승횟수 21회로 역대 1위 - 메이저 대회로만 한정하면 17회.

준우승을 포함하면 30회가 넘어간다. 세계 최연소 국내 종합기전 타이틀 획득(14세, 제8기 바둑왕전) 세계 최연소 세계 종합기전 우승(16.5세, 제3기 동양증권배, 최연소 세계챔피언) 최다연승(41연승), 국내 16개 기전 사이클링히트 달성(1994년, 제18기 기왕전 우승), 최다관왕 기록(13관왕). 연간 최고승률 기록 88.24%(75승 10패, 1988년) - 기록을 세울 당시의 나이는 13세. 이 기록은 32년 후 신진서가 76승 10패를 달성하면서 경신했다. 그랜드슬램 달성(2003년, 제4회 춘란배 우승) 통산 140회 우승 - 2위이며 1위는 조훈현 통산 승리횟수 2위(1796승) - 1위는 조훈현 1998년 모든 메이저 세계대회에 결승 진출 기록 -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삼성화재배, LG배, 춘란배 진출. 이 중 조훈현에게 패한 춘란배를 제외하고 모두 우승했다. 춘란배까지 우승했다면 메이저 세계대회 전관왕, 그것도 5개 이상의 세계대회 체제에서 달성한 전관왕이 되었을 것이다. 역대 최연소 500승(18세 4개월), 1000승, 1500승(35세, 제28기 KBS바둑왕전)달성

 

1975년 7월 29일,전라북도 전주에서 아버지 이재룡, 어머니 채수희 사이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현재의 조용하기만 한 이미지와 달리 어릴 적의 이창호는 곱게 자란 부자집 도련님에 꽤 고집이 세고 식탐도 있던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에 따르면 어릴 적 이창호가 문구점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사주자 아무 말 없이 씩씩거리다가 그대로 문구점 유리에 몸을 내던져 머리를 박고 기절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무서운 건 깨진 유리에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붕대를 감고 온 뒤 다음날에도 바둑을 두었다고... 물론 그런 고집이 후에 뚝심이 되어 천재라는 속성과 합쳐져 돌부처 바둑신 이창호의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였던 이화춘(86년 사망)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 이창호는 84년 두 차례의 시험기를 거치며 이정옥 六단,전영선 七단을 사사하며 성장해 나간 그는 10살이 되던 해, 그 유명한 조훈현의 내제자[16]로 들어가, 11세에 최연소 기록 2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1위는 9세에 입단한 조훈현) 바둑을 배운 지 4년 만에 입단할 정도이니 대단한 기재를 소유한 셈. 그리고 입단 시험도 10살 때 한 번 보고 떨어진 후 다음 해인 11살 때 통과한 것으로 보아 배운 지 3년 만에 연구생 1조까지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조훈현은 이창호의 이런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늦게 입단해서 정말 천재가 맞는가 하고 의구심을 가졌다고 술회했다.

 

다만 훗날 조훈현의 천재관이 바뀌어 아래에도 나와 있듯 이세돌, 박정환 등은 천재가 아니라 하며 이창호야말로 진짜 천재였다는 말을 한다. 조훈현 국수 본인이 최연소 입단 기록(9세)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의 사형이였던 오청원 때문에 남들과 전혀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을 거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훈현이 서로 사이가 영 좋지 않았음에도 서봉수는 그를 타고난 천재로 부르길 주저하지 않음을 보면 조훈현의 눈높이가 높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천재의 기준 자체가 초단기 성장의 기린아 스타일에 좀 더 가까웠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창호는 어린 시절엔 방금 둔 바둑도 잘 복기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묵묵하고 생각이 깊지만 쉽게 그 지적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영리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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