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위기에 처했다는 부산 영화제

2024. 5. 16. 02:01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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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위기에 처했다는 부산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23년 28회를 맞이한, 대한민국 최대의 비경쟁 영화제이다. 약칭은 BIFF.[3] 현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 일원에서 매년 10월 초에 개최되어 10일간 진행한다. 당시 문공부 기획관리실에 있던 김동호[4] 당시 집행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장에 취임하면서 작지만 권위 있는 영화제를 만들자는 취지로 추진, 당시 중앙대 이용관 교수, 부산예대 김지석 교수[5], 영화평론가 전양준 등의 주도로 만들었다.[6]

초청영화들은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게 선정한다는 것이 BIFF가 내세우는 상징성이다. 즉 할리우드 제작 영화에서부터 칸·베를린·선댄스영화제 수상작, 애니메이션 외에도. 독립영화, 예술영화, 단편영화 등의 영화들도 초청의 대상이다.

개·폐막작을 제외한 모든 영화는 2회 상영이 기본이며 개막일에는 개막작 이외엔 상영하지 않는다.[7] 야외 상영은 하루에 한번,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20시에 상영한다.

이 영화제를 기획했던 1990년대 당시에는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냐."하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했으나, 1996년 제1회 대회의 대흥행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이후 셀 수도 없이 유사 영화제(광주국제영화제, 여수국제해양영화제, 춘천국제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같은 영화제들)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대다수가 사라졌으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포함 전주국제영화제나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괜찮게 남은 편이다.

초창기 주요 무대는 중구 남포동이었다. 1회 영화제 당시만 해도 해운대구 일대는 아에 개발이 되어있지도 않을 뿐더러 당시에는 부산의 동쪽 변두리였다. 현재의 해운대 주요 상영관은 그 당시 수영비행장이였다.

남포동 일대는 영화 마지막 상영이 끝나는 12시 즈음이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려서 갈 데가 없었는데, 외국 게스트 집행위원장과 평론가들과 함께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밤새 술을 마셨던 게 부산국제영화제의 명물 스트리트 파티가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 게스트들이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그때가 정말 좋았다."고 한다고. 왕가위가 폭탄주를 만들고 벽에 휴지를 던져 붙이고, 술 먹다 보니 옆자리에 칸 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집행 위원장과 대만의 허우사오시엔 감독이 있고, 해운대 포차촌에 갔더니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광경.

이후 남포동 일대에 PIFF(현재의 BIFF) 광장이 조성되고 원도심의 쇠락 속에서 새로운 활기를 맞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커지는 규모에 비해 영화관 시설이 낡고 협소할 뿐더러 비프광장로 주변으로 확장을 할 수 없다 보니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 해운대 쪽이 적합하여 행사들을 조금씩 옮겨갔다.

그러나 영화 상영과 이벤트가 서로 이원화가 되어 불편함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부산 시가지 남쪽과 동쪽 끝에 있는 남포동과 해운대 간에는 어림잡아 1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의전당 등 핵심 시설이 완공된 2011년 16회 BIFF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운대 일대에서만 모든 것을 진행 및 상영하였다가, 남포동 일대 상인들의 엄청난 반발로 인해 2012년 17회부터는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다시 상영관으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였는지 2017년 제22회부터는 새로 개관한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을 포함해 비프광장에서 각종 행사를 추가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부터는 롯데시네마 대영 상영관으로 공식 상영작들을 다시 상영하게 되었다.

서병수 시장과의 갈등과 다이빙벨 논란은 해당 문서로. 이후 취임한 오거돈 시장이 임기 동안 1000억을 지원해 소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오거돈 "BIFF 독립·도약 기금 4년간 1000억 조성" 이에 영화 단체들도 2018년부터 보이콧을 전면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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