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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에 야쿠자랑 결혼했다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된 여자 인생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이리날자 2023. 6. 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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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에 야쿠자랑 결혼했다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된 여자 인생

 
 
 

일본의 변호사이자 청소년문제협의회 특별위원. 현재는 우메다종합법률사무소(梅田総合法律事務所) 소속 객원변호사다. 방황과 역경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기록한 자서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1]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렸다.

출생과 어린 시절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38세, 어머니가 37세 때 얻은 늦둥이 무남독녀이다. 어머니는 미쓰요를 낳기 며칠 전까지 직장을 계속 다녔으며, 전치태반이라서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아들을 기대했던 아버지는 "딸입니다"라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는 조금 실망했지만,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딸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절에 가서 특별히 제일 좋은 이름을 받아 왔다고 한다. 미쓰요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서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미쓰요를 돌봐 주셨다. 외할머니는 딸만 4명을 낳았는데, 막내를 낳고 얼마 안 되어 과부가 되는 바람에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며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딸들과 외손주들에 대한 정이 각별했고, 장녀가 늦은 나이에 낳은 외손녀인 미쓰요를 몹시 예뻐했다. 외할머니는 어린 미쓰요를 돌보면서 미쓰요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도 주셨다. 외할머니의 이러한 사랑과 가르침은 미쓰요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아서 큰 영향을 끼쳤고, 이는 미쓰요의 갱생에도 한몫을 했다. 부모님 또한 바쁜 와중에도 미쓰요를 몹시 사랑했다.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아버지는 종종 미쓰요의 도시락을 만들어 주셨고, 미쓰요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미쓰요의 학교에서 학예회 등의 행사가 있으면 아버지는 직장을 쉬면서까지 참석하여 미쓰요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만나는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딸의 자랑을 항상 늘어놓아 아버지의 유별난 딸 사랑은 유명했다. 미쓰요는 이렇게 외할머니와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야말로 귀하고 소중한 아이였다.

 

집단괴롭힘의 시작

 

불행의 시작은 미쓰요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78년에 미쓰요의 가족이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어서 집을 넓혀 이사를 가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지만 학군이 달라져서 전학을 해야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미쓰요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곧 이유 없이 미쓰요를 집단따돌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미쓰요를 무시하는 정도였지만, 그 강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학생들은 미쓰요의 책상에 외설적인 욕설[2]을 써 놓았다. 등교하여 그것을 본 미쓰요는 경악하여 지우개로 지워 버렸으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교실 책상에 연필이나 펜으로 써놓던 욕설을 나중에는 전교생이 함께 쓰는 음악실, 미술실, 과학실, 가사실 등의 책상에 칼로 새겨 놓았던 것이다. 미쓰요는 낙서를 지우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는데 전교생이 그런 미쓰요를 보며 조롱하곤 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 미쓰요는 점심도 혼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심은 반드시 교실에서만 먹어야 했기에, 다른 곳으로 피해 있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집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싸 주셔도, (어쩌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날에는) 아무리 맛있는 빵을 사 와도, 미쓰요는 입맛이 없었다. 당시 점심시간마다 학교에 빵을 팔러 오는 트럭이 있었는데 미쓰요는 다른 학생들과 부대끼는 것이 힘겨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빵을 사러 가곤 했다. 그렇게 미쓰요가 빵을 사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해자들은 미쓰요의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기도 했다. 그 물건들 중에는 부적도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미쓰요를 위해 외할머니께서 특별히 절에서 받아오신 물건이었다. 미쓰요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더욱 마음이 아팠다. 미쓰요가 쓰레기통에서 물건을 찾아 오자 가해자들은 미쓰요의 책상에 쓰레기를 쏟아 놓았다. 온통 쓰레기로 뒤덮인 자리를 보고 미쓰요가 놀라자 가해자들은 미쓰요를 비꼬며 온갖 조롱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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